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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한동안 제 소비 패턴이 '베블런 효과'의 교과서적인 예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월급 130만 원으로 빚을 갚던 20대 초반을 지나 처음으로 돈이 생겼을 때, 저는 거침없이 썼습니다. 지금 와서 그 시절을 돌아보면 그게 단순한 씀씀이가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꽤 정교하게 설명되는 소비 행동이었습니다.
보상심리가 불을 붙인 소비의 시작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결핍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소비 욕구는 훨씬 거세게 터져 나옵니다. 4년 가까이 월세, 공과금, 대출금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사업자를 내고 매니저 타이틀을 달게 됐을 때 — 그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씀씀이가 아니라 '보상심리'가 작동한 결과였습니다.
보상심리란, 오랜 기간 억눌렸던 욕구가 상황이 바뀌는 순간 한꺼번에 분출되는 심리 기제입니다. 쉽게 말해 "그동안 못 했으니까 이제 실컷 해야지"라는 마음이 소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게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인간이라면 거의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명품 소비는 부유층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렇지 않았습니다. 수입이 갑자기 늘어난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이 패턴에 빠져듭니다. 소득이 없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명품 소비 열풍이 불었던 것처럼, 이 심리는 계층을 가리지 않습니다.
과시소비의 실체 — 가격이 오를수록 더 갖고 싶어지는 이유
그 시절 저의 소비를 지금 냉정하게 분석하면, 단순히 좋은 물건이 갖고 싶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가졌다는 느낌, 그 상대적 우위감이 핵심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의 본질입니다. 여기서 베블런 효과란,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1899년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상류층의 소비 행태를 분석하며 제시한 개념으로, 과시욕이 소비를 이끄는 원동력임을 설명합니다(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이 효과와 맞물려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스놉 효과(Snob Effect)입니다. 스놉 효과란, 대중이 많이 소비할수록 해당 상품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뜻합니다. 나만 가질 수 있는 희귀한 것, 남들이 쉽게 살 수 없는 것에 끌리는 심리입니다. 저 역시 그때 "남들도 다 가진 것"에는 흥미를 잃고, 조금 더 특별해 보이는 것을 찾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저서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에서 사치 소비의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 과시형: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소비
- 질시형: "나라고 못할 게 뭐 있냐"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소비
- 환상형: 명품을 소지하면 더 나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 소비
- 동조형: 주변 흐름이나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소비
솔직히 저는 그때의 제 소비가 어느 유형인지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질시형과 환상형이 뒤섞인 상태였습니다. "나도 이제 이 정도는 써도 되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물건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치소비가 남긴 것 — 후회인가, 수업료인가
지금에 와서 그때 썼던 돈을 생각하면 아깝다는 감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그 돈을 꾸준히 모아 주식이나 자산으로 불렸다면 지금쯤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솔직히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소비를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써봤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소비를 하지 않습니다. 그게 저에게는 꽤 값진 수업료처럼 느껴집니다.
일반적으로 과소비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억눌린 결핍 뒤에 찾아온 소비는 심리적 회복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 소비가 진짜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가격 품질 연상 심리에 기반한 것인지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격 품질 연상 심리란, 비싼 것이 곧 좋은 것이라고 자동으로 연결 짓는 인지 편향을 말합니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부에 대한 욕망은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고 싶은 욕망에서 기인한다"고 했습니다. 제 경험이 정확히 그 말을 증명했습니다. 아무리 많이 써도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았고, 그 기준이 항상 '남과의 비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 심리 관련 자료를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클수록 과시소비 성향도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소비자원).
제 경우엔 그 사이클에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 소비를 통해 자기 가치를 확인하려는 시도는,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힙니다. 존재 자체에서 가치를 찾기 시작하면 그 소비 충동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는 걸 — 저는 몸으로 배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베블런 효과는 진짜 부자들한테만 해당되는 거 아닌가요?
A. 일반적으로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 경험처럼 수입이 갑자기 늘어난 평범한 사람, 심지어 소득이 없는 대학생 사이에서도 명품 소비 열풍이 나타납니다. 베블런 효과는 특정 계층이 아니라 '비교 심리'가 작동하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Q. 가성비와 가심비, 뭐가 더 나은 소비인가요?
A. 둘 중 하나가 더 낫다기보다는 소비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는 합리적 소비이고, 가심비는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입니다. 문제는 그 가심비가 진짜 나의 만족인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구분하는 일입니다. 저는 그 구분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Q. 스놉 효과와 베블런 효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베블런 효과는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 전반을 가리키고, 스놉 효과는 그 안에서 '대중화된 것은 피하고 싶다'는 심리를 특별히 지칭합니다. 쉽게 말해 베블런 효과가 더 넓은 개념이고, 스놉 효과는 희소성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 패턴입니다. 둘 다 타인과의 차별화 욕구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Q. 보상심리로 인한 소비, 그냥 두면 자연히 사라지나요?
A. 제 경험상 충분히 써보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자연스럽게 수그러들었습니다. 억지로 막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소비가 어떤 심리에서 비롯된 것인지 인식하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꽤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소비 패턴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베블런 효과는 단순히 비싼 걸 좋아하는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타인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책이 아니라 20대의 지갑으로 배웠습니다. 그 경험이 지금의 소비 습관을 만들었고, 그 점에서 후회는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한 번쯤 자신의 소비 패턴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갖고 싶은 그것이 진짜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와의 비교에서 나온 것인지 —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소비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