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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오래전까지 "왜 삼성 은행은 없지?"라는 질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없으니까 없는 거겠지, 하고 넘어갔죠.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한국 스릴러 영화에서 재계 서열 몇 위 그룹이 금융기관을 쥐고 흔드는 장면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저게 실제로 가능한 일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금산분리는 바로 그 섬뜩한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제도입니다.
삼성 은행은 왜 없을까 — 금산분리가 막고 있는 것들
제가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영화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법으로 막아놓은 거구나"였습니다. 삼성카드, 삼성생명, 삼성화재는 있는데 삼성은행이 없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금산분리(金産分離), 즉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법적으로 분리해놓은 제도 때문입니다. 여기서 산업자본이란 제조업·유통업처럼 실물 경제를 움직이는 비금융 기업을 뜻하고, 금융자본은 은행·보험·증권처럼 돈을 매개로 영업하는 기관을 말합니다.
현행 은행법은 산업자본이 보유할 수 있는 은행 의결권 주식을 4% 이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은행법). 아무리 삼성전자라도 은행 지분을 4%까지밖에 못 가진다는 뜻입니다.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제 반응은 "4%면 사실상 아무것도 못 하는 거 아닌가"였는데, 그게 바로 이 제도의 의도입니다.
왜 이런 제한이 필요한지는 한 가지 시나리오만 떠올려도 충분합니다. 만약 삼성전자가 삼성은행을 지배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삼성전자 경영이 어려워지면 삼성은행에서 한도 이상의 자금을 끌어다 쓸 유인이 생깁니다. 그리고 삼성전자가 실제로 망한다면, 돈을 빌려준 삼성은행도 함께 흔들리고, 거기에 예금을 맡겨둔 일반 시민들의 돈까지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제가 영화에서 봐온 그 장면이 현실이 되는 겁니다. 반대로 은행이 산업을 지배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한은행이 신한전자를 세우고 예금자 돈으로 반도체 사업에 베팅하다 실패한다면, 결국 피해는 예금자에게 돌아옵니다.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2010년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을 통해 유사한 규제를 시행 중이며, 일본은 은행 지분 5% 이상 보유 시 신고 의무, 20% 이상 시 감독 당국 승인을 요구합니다(출처: 미국 연방준비제도 도드-프랭크법 안내). 역사적으로는 1929년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가 은행이 고객 예금으로 무분별한 투기 투자를 감행한 것이었고, 그 반성으로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이 만들어진 배경도 있습니다. 금산분리는 오랜 실패의 역사에서 걸러진 안전장치인 셈입니다.
- 산업자본의 은행 의결권 주식 보유 한도: 4% 이하 (은행법)
- 금융사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 보유 한도: 15% 이하 (금융산업구조개선법)
- 금융지주회사는 금융산업 내 시너지를 위해 자회사 간 일정 범위 소유 허용
- 인터넷전문은행(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은 별도 인터넷전문은행법 적용
삼성전자 자사주 소각과 금산분리 충돌 — 찬반 논쟁의 현주소
제가 이 주제를 더 들여다보다 흥미로운 실제 사례를 만났습니다. 삼성전자가 자사주 소각을 추진하면서 금산분리 규제와 정면으로 부딪힌 일입니다. 여기서 자사주 소각이란 기업이 시중에 유통 중인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인 뒤 없애버리는 행위입니다. 발행 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한 나머지 주주들의 지분율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의 주주입니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하면, 삼성생명·삼성화재는 주식을 한 주도 사지 않았는데 지분율이 법적 한도인 10%를 초과하게 됩니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 흔히 금산법이라 불리는 이 법률은 금융회사가 비금융 계열사 주식을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금융 계열사란 제조·유통 등 금융업이 아닌 계열사를 의미합니다. 삼성전자가 삼성생명·삼성화재 입장에서 딱 그 비금융 계열사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을 어길 수 없으니 삼성전자 주식을 시장에 팔아야 합니다. 그 순간 대규모 매물이 쏟아지고, 주가는 오히려 하락 압력을 받게 됩니다. 주주 가치를 높이려고 한 자사주 소각이 역설적으로 주가를 끌어내리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과 지분 규제 사이의 충돌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규정 간 충돌이 생길 때가 제도의 빈틈이 드러나는 순간인데, 이 사례가 딱 그런 경우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금산분리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습니다. 찬성 측은 애초에 이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 즉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이해 상충(conflict of interest) 방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이해 상충이란 금융기관이 고객의 이익보다 지배 주주인 산업자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반대 측은 4대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이 이미 50%에 육박하거나 초과한 상황에서, 외국 자본은 자유롭게 금융사를 보유하는데 우리 기업만 규제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정치적으로 어느 편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제 생각이 꽤 분명합니다. 권력이 한쪽으로만 쏠리면 그건 독재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에서도 여야가 균형을 이뤄야 하듯, 경제에서도 산업자본이 금융을 완전히 장악하면 그 피해는 결국 아무런 권한 없는 일반 서민에게 돌아옵니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더라도 서서히, 조용히 쌓여가는 불이익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래서 저는 금산분리 완전 폐지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자사주 소각처럼 규제 간 충돌이 생기는 특수한 경우에는 예외적 승인 같은 유연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삼성 은행이 없는 이유가 금산분리 때문인가요?
A. 그렇습니다.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은행 의결권 주식을 4% 초과해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은행을 직접 지배하는 건 법적으로 막혀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냥 없는 게 아니었구나" 싶었는데, 오히려 있어서는 안 되도록 설계된 겁니다.
Q. 카카오뱅크는 카카오가 대주주인데, 금산분리 위반 아닌가요?
A. 일반 은행법이 아니라 인터넷전문은행법이라는 별도 법률을 적용받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가 약 27%의 지분을 보유 중인데, 이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서만 허용된 예외입니다. 기존 시중은행은 여전히 은행법의 4% 한도를 적용받습니다.
Q. 금산분리를 완전히 없애면 어떻게 되나요?
A. 대기업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자기 계열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대출 심사를 하거나 경쟁사의 금융 정보를 유출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글래스-스티걸법 폐지 이후 은행들의 무분별한 투자가 이어지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이어진 역사가 있습니다. 제가 영화에서만 봐왔던 그 시나리오가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난다는 걸 역사가 보여줍니다.
Q. 자사주 소각이 왜 금산분리와 충돌하나요?
A. 자사주 소각으로 발행 주식 수가 줄어들면,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자동으로 올라갑니다. 삼성생명·삼성화재처럼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금융사가 이미 법적 한도에 가까운 지분을 가진 경우, 소각만으로 한도를 초과하게 됩니다. 그러면 초과분만큼 주식을 시장에 팔아야 하고, 이것이 주가 하락 압력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결론
제가 직접 겪어본 건 아니지만, 영화 속 재벌과 금융기관이 결탁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저는 그게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는 걸 느껴왔습니다. 금산분리는 그런 상황을 제도적으로 막아주는 장치입니다. 완벽한 제도는 아닐 수 있습니다. 자사주 소각 사례처럼 현실에서 다른 정책과 충돌하는 빈틈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생긴 이유, 즉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경제력 집중 방지라는 원칙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금산분리를 당장 없애는 것보다는,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유연한 운용 방안을 마련하는 방향이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경제 뉴스나 기사에서 금산분리, 금산법, 은산분리 같은 단어가 나오면, 이 글을 떠올리며 큰 그림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